터뷰

[열정 36℃]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2019.04.23 조회수 1,158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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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36℃] (1) 3D 프린팅 설계사 임진환(생명과학과 12학번) 동문
맹학교 졸업생들에 ‘만지는 졸업사진’ 선물해 화제
“지금 방황할지라도…분명 자신만의 길 있어“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열여섯 살 소년 임진환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 관절 물렁뼈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을 회복해 갔지만, 피아노를 칠 때면 손목이 저려왔다. 그렇게 첫 꿈을 접었다.

이후 그의 걸음은 ‘갈 지(之)’자를 그려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로 졸업했지만, 교차지원을 해서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동차공학(카메카트로닉스학과)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군 전역 후에는 3D 프린팅 기술에 푹 빠져 지냈다. 현재는 3D 프린팅 스타트업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임 동문은 최근 맹학교 학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제작해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관련 기사▷https://bit.ly/2KXLt8Z)

지난 2월 졸업을 앞둔 그를 교내 창업보육센터에서 만났다. 임 동문은 “돌이켜 보면 대학에 와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면서 “다만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맞는,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몇 주 후.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니) 지금 큰 꿈이 없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만지는 졸업사진’

Q. 맹인학교 졸업생들에게 3D 프린터로 흉상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앞을 못 보는 학생들을 위한 ‘만지는 졸업사진’이라니. 비장애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애인들의 소외감과 불편을 잘 짚어낸 것 같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지난해 우연히 유튜브에서 3D 프린트로 맹인학교 졸업앨범을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됐다. 너무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면서 여전히 맹인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사진첩 형식의 졸업앨범이 전달되고 있더라. 비장애인은 사진을 볼 수 있지만, 정작 주인공인 맹인학생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나. 한 맹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졸업앨범을 나눠줄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 어차피 못 보니까.

3D 프린팅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을 설득해 회사 장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Q. 프로젝트는 어떤 단계로 진행됐나. 실제 3D 프린팅 과정과 같나.

A. 맞다.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3D 스캐너로 1차 본을 뜬다.  다음에는 스캔한 파일을 실제 인물과 닮도록 좀 더 디테일하게 편집을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된 파일을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후가공을 거쳐 졸업식 때 전달해주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아무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라서 혼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인근 별내고등학교에 자원봉사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15명의 학생들이 동참해줬다. 학생들에게 3D 스캐너, 모델링 편집 등 3D 프린팅의 전반적인 기술을 교육하면서 스캔과 흉상 가공 작업에 도움을 받았다.

▲ 별내고 학생 15명도 자원봉사자로 동참했다. 3D 스캐닝을 하는 별내고 학생들(사진 왼쪽)과 모델링 편집을 교육하는 임진환 동문(오른쪽).

Q. 프로젝트 진행은 순조로웠나.

A.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학교를 섭외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거의 모든 맹학교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이슈되는 것에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더라. 유일하게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에서 사업의 취지에 공감해주셔서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섭외 후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복합장애를 안고 있는 학생들은 스캔할 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버거워했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고,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기술이다 보니 학생들이 당황해하면서 진척이 더뎠다. 스캔을 하려고 학교에 3번 찾아가서 3번 다 실패하는 등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생각을 바꿨다. 기술적인 부분과 프로젝트에만 집착하다 보니 학생들과의 교감에 소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학생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접근하니 일이 수월해졌다. 먼저 다가와주고 노력해준 학생들의 모습에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Q. 기술은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기술자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텐데.

A. 졸업식 때 한 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7년 동안 맹학교를 다녔는데, 친구 얼굴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고. 그렇다고 함부로 얼굴을 만져볼 수 없으니 아쉬웠다고. 친구들의 얼굴을 영영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가슴이 참 뭉클했다.

3D 프린팅을 처음 배울 때는 이 기술을 이렇게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기술 분야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고, 너무 자기 이익만 좇지 않는다면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 2월 18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졸업식. 8명의 맹인 학생들은 이날 서로의 흉상을 더듬으며 “친구의 얼굴을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 만난 ‘3D 프린팅’

임진환 씨가 3D 프린팅 기술을 처음 만난 건 군 전역 직후였다. TV에서 우연히 3D 프린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작은 기계 하나로 인공장기나 의수, 의족, 복잡한 기계부품을 척척 만들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단한 기술이다. 이건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

Q. 기술은 어디서 배웠나.

A.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학원을 알아봤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고 거리도 멀어서 내가 배울 수 없는 건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서 대학일자리본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3D 프린팅 실무교육’ 공고문을 보게 됐다. 내가 딱 원하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Q. 3D 프린팅 기술이 최근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시장이니까.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이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業)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

A. 3D 프린팅 분야가 물론 아직 완전히 개척된 시장이 아니고,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누구보다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암감 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3D 프린팅 기술 자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따라 음식도 가능하고 실제 의류도 생산하고 있다. 인공장기나 피부조직, 혈관 등 의학 분야에서도 이미 여러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다. 3D 프린팅이 빅데이터, AI와 함께 4차산업혁명의 3가지 핵심 과제 중 하나이지 않나. 이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Q. 생명과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카메카트로닉스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지금은 3D 프린팅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대목마다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데.

A, 사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하지만 사고로 오른손 관절을 다치면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됐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과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대학은 생명과학과로 입학했다.(웃음) 학교에 다니면서 복수전공으로 공학인 카메카트로닉스를 했고, 졸업을 하면서 3D 프린팅 회사로 취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보통의 대학생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생각도 없이 꿈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냥 학교에 다니기만 한 세월도 있었다. 그런데 다 자기만의 길이 있는 것 같더라. 누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연결되면서(Connecting the Dots) 자신에게 맞는 길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Q.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 같다.

A. 지금도 꿈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학생들이 많을 거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나는 분명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꿈이 없더라도 너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하는 것을 계속 하면서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풀어갔으면 좋겠다.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인터뷰 중 그는 ‘잭 안드라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의 친구가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장당 3센트의 비용으로 각종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한 소년이다. 기존 진단 방법보다 168배 빠르고, 가격은 2만6000배나 낮춘 제품이다.

임 씨는 “평소 이 소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뭔가 대단하고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의 문제점을 해결해서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키워주고 실현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 이 3D 프린팅 기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Q. 10년 후 본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A. 10년 후까지는 감히 상상을 안 해봤지만, 의수·의족·인공장기 등을 설계하는 인체공학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제품들이 있지만,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3D 프린팅 기술과 접목시켜 생산비용과 시간을 더 줄이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게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기술을 통해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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